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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진나라가 점점 위세를 떨치자 한나라가 이를 두렵게 여겨 진나라의 국력을 낮춰보려 계략을 꾸밉니다. 한나라의 토목학자인 정국을 진나라로 보내서 필요없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도록 하는 것이었죠.

 

정국은 당시 진나라 왕이었던 영정에게 관중땅에 평야를 만들 수 있는 대규모 운하 사업을 제안합니다. 이것이 "정국거"입니다. 영정은 사업이 타당하다고 생각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중에 정국의 계략이 들통이 나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정국은 "처음에는 진나라를 망하게 할려고 시작했지만 이것은 후에 분명 진나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영정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여 정국을 죽이지 않고 계속 일을 진행 시킵니다.

 

그리고 이 공사가 끝났을때 관중땅에는 73000헥타르의 농지가 생겨납니다. 1헥타르가 약 3000평이니 그 규모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곡식이 곧 돈이었기때문에 진나라의 국력은 엄청나게 올라가게 되고 중국 땅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물론 군량미로도 쓰였겠지요.

 

만약 이 정국거가 없었다면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 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정국때문에 타국에서 온 학자들을 모두 간첩으로 몰아 쫓아내는 "축객령"이 발동 됩니다. 이때 타국에서 진나라로 들어왔던 많은 선비들이 쫓겨나는데요 그중에는 후에 통일 진나라의 승상이 되는 "이사"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는 인재의 고른 등용이 중요하다고 영정을 설득했고 영정이 이를 받아들여 쫓겨났던 많은 선비들이 돌아옵니다. 이때 이사가 "간축객서"를 통해 아래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루었고, 황하는 한 줄기의 시냇물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루었다."

 

이처럼 진시황 영정은 사리분별이 밝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훌륭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국을 등용해 정국거를 완성하였고 이사를 등용해 통일 진나라의 기반을 닦습니다.

 

이상한 점은 정국이 조국 한나라에 분명 가족이 있었을텐데 왜 굳이 목숨을 보전하고 진나라를 위해 충언을 하였으며 대공사를 마무리 했냐는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 진시황이 정국에게 정말 잘해줬고 정국이 봤을 때 진시황이야말로 왕의 자질이 있다고 판단하 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미디어에서 진시황을 폭군의 이미지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타국의 인재들까지도 고르게 등용하였고 수많은 인재들이 진시황 밑으로 모였던 것을 보면 진시황은 분명 좋은 군주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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